장애인용 점자책이나 오디오북을 만들기 위해 출판사가 국립중앙도서관에 디지털파일을 제출해야하는 '납본 제도'를 더 강화하는 법안이 나왔다. 현행법에서도 납본은 '의무'지만 별도 제재가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정호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국립중앙도서관으로부터 납본을 요청받은 발행자 등이 정당한 사유 없이 30일 이내에 자료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의 '도서관법 일부법률개정안'을 발의했다고 25일 밝혔다.
현행법에서는 국립중앙도서관은 장애인을 위한 도서관 자료의 수집·제작 등을 위해 자료를 발행하거나 제작한 자에게 디지털파일을 납본하도록 요청할 수 있다.
하지만 출판사 등이 납본 요청에 응하지 않더라도 별다른 제재조항이 없어 디지털파일 제출율은 낮은 실정이다.
정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국립중앙도서관이 발행자 또는 제작자에게 납본 요청한 자료 1711건 가운데 43.4%인 743건만이 납본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장애인도서관 측 관계자는 "현행법에서도 납본은 의무인데 종이책처럼 과태료 부과 등 법적 재제 장치가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개정안의 과태료 부과 방침이 납본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개정안에서는 납본을 요청할 수 있는 도서관자료를 '장애인을 위한 특수자료로 변환 및 제작이 가능한 자료'로 한정했다. 국립중앙도서관의 납본 의무를 정당한 사유 없이 위반할 경우 출판사에 도서 정가의 10배에 해당하는 금액을 과태료로 부과할 수 있다.
현재 국립장애인도서관은 출판사가 제출한 납본이 없더라도 신청 도서를 중심으로 대체자료를 만들고 있다. 장애인도서관은 2012년 국립중앙도서관 소속으로 설립된 이후 총 1만8960종의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한편 출판업계에서는 '디지털 파일'을 제출할 경우 유출 등 저작권을 침해받을 소지가 있다고 우려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2년 발표한 '디지털파일 납본·기증 활성화 방안 연구'에 따르면 설문에 응답한 대한출판문화협회 및 한국출판인회 회원사 106곳 가운데 96개사(48.5%)는 납본을 위해서는 정부가 디지털파일 유출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답했다. 80개사는 납본시 저작권 문제를 우선 고려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한 출판계 종사자는 "책의 설계도나 다름없는 원본을 달라고 하는 것은 오만한 생각"이라며 "차라리 장애인용 대체자료 제작틀을 출판사에 제공하고 그 결과물을 합당한 가격에 사가는 게 낫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우려는 2009년 9월 영화 '해운대'의 시각장애인용 음향해설을 위해 제출된 동영상 파일이 중국으로 흘러나간 사건 때문에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
당시 시각장애인단체 음향엔지니어였던 김모씨는 영화 '해운대' 동영상의 시각장애인용 음향해설 작업을 위해 CJ엔터테인먼트로부터 받은 파일을 친구에게 DVD로 넘긴 것으로 조사됐다. 흘러나간 파일은 중국 유학생이 인터넷 공유사이트에 올리면서 확산됐고 현지에서는 영화가 DVD로 제작돼 헐값에 팔리기도 했다.
국립장애인도서관 측에서는 도서 납본의 경우 '서지정보유통지원시스템'에 암호화돼 저장되기 때문에 유출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고 말한다. 파일 접근 또한 엄격히 통제돼 있으며 열람 내역도 기록된다는 설명이다.
장애인도서관 관계자는 "이제까지 납본 파일이 유출된 일은 없었다"며 "영화파일 유출 사건이 전혀 관계 없는 납본 영역까지 영향을 미처 막연한 우려가 퍼진 것 같다"고 말했다.